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을 아십니까? 호밀빵, 보드카 등의 주원료인 호밀이 중세 농경사회에서 농작물로서의 가치가 높아지자, 외부인과 짐승들로부터 호밀밭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직업 말입니다. 벨라루스와 러시아 국경 근처 어느 지방에 있었을 법도 하지만, 그런 직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J.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열여섯 살 소년 홀든 콜필드의 장래희망이 '호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가 호밀 농사에 지대한 관심을 지닌 귀농 청년 유망주였다는 대목은 책 전체를 통틀어 등장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홀든이 생각하는 ‘파수꾼’은 호밀밭을 하루 종일 지키며 해맑게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이 실수로 호밀밭 옆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려고 할 때 붙잡아주는 직업입니다. 아이들이 어떠한 걱정도 없이 언제까지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게 놀 수 있도록 말이죠.
홀든 콜필드는 허술할 정도로 순수합니다. 로버트 번스의 서정시이자 스코틀랜드 전통 동요인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만나면〉을 들은 홀든이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단다면’을 ‘호밀밭을 거니는 몸뚱이를 붙잡아 준다면’으로 잘못 알아듣고는 상상 속 직업을 만들어냈을 정도로요.
극도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홀든 콜필드는 위선, 사기, 가식과 같이 순수와 배치되는 개념을 전부 혐오합니다. 영화나 연극조차 ‘실제처럼 연기한다’는 이유로 싫어할 정도입니다. 가식과 위선이 세상을 사는 기술의 한 종류로 인정받기까지 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의 순수를 저해하는 존재가 넘쳐납니다.
홀든 콜필드
“오빠가 싫어하는 건 백만 가지도 넘을 거야. 그렇지?”라는 여동생 피비 콜필드의 말처럼 홀든 콜필드는 냉소의 제왕입니다.
‘내가 만약 피아노 연주자라면 저런 바보 같은 사람이 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더 끔찍한 일일 것 같다. 차라리 옷장 속에 들어가 연주할 것이다.’, ‘특히 목사라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내가 다닌 학교에는 모두 목사가 있었는데 모두들 설교를 할 때마다 억지로 꾸민 거룩한 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것이 역겨웠다.’
사회의 허위와 위선을 담백하고 위트 있게 꼬집는 홀든 콜필드. 현실 세계 속 그와 견줄 수 있는 독설가는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보컬 조니 로튼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명문 기숙학교에서 퇴학당한 문제아 홀든 콜필드의 독백으로 펼쳐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1951년 미국에서 발표됐을 때, 기성세대들은 ‘홀든은 불만이 너무 많다’라며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학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학생을 차별하는 교사들을 비판하고, 오로지 이성 관계에만 몰두하는 동급생들에게 냉소를 보내는 홀든의 모습은 오히려 젊은 독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습니다. 그 결과, 21세기에 이른 지금에도 ‘홀든 콜필드’라는 이름은 반항아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반항아들은 ‘별종’ 취급하도록 시스템이 만들어진 이 보수적인 땅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전 1위’로 선정됐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요? 위선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예민한 성찰을 통해 용감하게 저항하는 홀든 콜필드를,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