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를 옮기다’, ‘자세나 태도, 방식을 바꾸다’, ‘교대하다’와 같은 뜻을 가진 영 단어 '시프트(Shift)'. 10가지가 넘는 이 단어 뜻을 전부 알지 못한다고 출세에 지장이 있거나 가정 내 불화가 생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한국 공용어가 영어도 아니고 말이죠.
하지만 ‘시프트(Shift)’라는 단어는 2020년 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단 하루도 접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실생활과 밀착된 단어입니다.
컴퓨터 키보드 자판 왼쪽 아래쯤에 ‘Shift' 키가. 스마트폰 자판의 같은 위치에도 위쪽을 향한 화살표(⇧) 모양 시프트 키가 있습니다. 전체 성인 남녀 97%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 대한민국에서 시프트 키를 누르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거나, 메일을 보낼 수 있을까요?
시프트 키를 누르지 않고는 쌍시옷 받침이 들어간 ‘~했습니다’를 쓸 수 없고, 거친 감정 표현이나 감탄사에 사용되는 쌍시옷 언어를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쓸’ 수도 없고요.
이처럼 ‘시프트’와 우리 삶이 밀접한 가운데, 이 단어가 또한 자주 쓰이는 분야는 야구입니다. 수비 시 각 타자의 타격 습성에 맞게 수비가 용이하도록 전략적으로 수비 위치를 변칙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시프트’, 혹은 ‘수비 시프트’라고 합니다.
194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처음 등장한 이 수비 전략은, 보스턴 레드삭스 역대 최고 선수인 왼손 강타자 테드 윌리엄스를 막기 위해 클리블랜드의 선수 겸 감독 루 보드로가 고안했습니다.
테드 윌리엄스는 3루 방향으로 밀어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1루 쪽으로 당겨치는 것을 즐겼습니다. 통산 출루율 0.482로 메이저 리그 역대 1위를 기록한 이 강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상대팀은 타구가 날아올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3루 쪽 베이스에 최소한의 수비를 남겨놓고, 테드 윌리엄스가 타구를 주로 날리는 1루 쪽으로 대부분의 수비를 배치시켰습니다.
괴물 타자인 테디 윌리엄스를 시프트로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으나, 이 수비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습니다. 이후 시프트는 2000년대,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 타자인 배리 본즈를 상대하기 위한 방편이 되기도 했으며, 야구가 점점 더 ‘과학적인 스포츠’로 변모 중인 현재에는 더욱 대중적이며 효과적으로 쓰이는 수비 시스템으로 발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