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랄, 파운더리, 밀키, 알데하이드 노트, 관능적인 바닐라, 톡 쏘는 핑크 페퍼, 우아한 화이트 로즈, 머스크에 가미한 은은한 아이리스 터치, 소금기가 느껴지는 마린 노트, 촉촉히 젖은 피부 향, 아늑하고 아득한, 섹시하지만 너무 압도적이지 않은...
향기를 표현하는 언어들입니다. 이 같은 단어들을 접하다 보면 간혹 아늑함보단 아득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대상을 문장이나 단어로 이해하고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상대방의 향기를 칭찬하기 위해 ‘촉촉히 젖은 피부 향이 난다’는 표현을 감탄스러운 제스처와 젠틀한 언어로 말한다고 한들, 대상과 상황에 따라 불편한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몸을 가꾸는 데 하루 2시간씩 투자하는 건실한 어느 20대 청년이 운동을 마치고 나와 뿌린 니치 향수를 두고 “소금기가 느껴지는 마린 노트가 인상적이다”라고 말해준다면 당사자는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릴지도 모릅니다.
1921년 발매 후 100주년을 넘은 ‘샤넬 No.5’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향수입니다. 이 향수의 공식 설명은 ‘메이 로즈와 그라스 재스민의 향기 사이로 알데하이드가 어우러진 플로럴 부케 향을 지닌 향수’입니다. 비공식 설명은 ‘고혹적이고 중후하며 무겁고 우아한 느낌의 향수’이며 ‘품격 있고 고급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스웨덴의 니치 향수 브랜드이자 특유의 컴팩트한 향수 케이스가 인상적인 ‘바이레도’. 브랜드 대표 향수인 ‘블랑쉬’는 ‘매우 달고 쨍하며 포근한 코튼 향’을, 또 다른 모델 ‘모하비 고스트’는 ‘몽환적인 느낌’의 향을 낸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조향사에 가까운 향수 마니아거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광적인 향기 지배자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가 아니고서야 맡아보기 전에 도대체 저 향이 어떤지 직관적으로 알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마릴린 먼로가 잠옷을 입는 대신 뿌리고 잤다’는 ‘샤넬 No.5’라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향’을 만든다는 바이레도의 향수라도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