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색 어둠 같은 공기 속. 꽃이 만발한 초원 가장자리. 관능적이면서도 조금 위태로운 모습의 남과 여가 있습니다. 검은색과 흰색 사각형이 불규칙하게 배열된 금빛 가운을 두른 남자는 평행 물결선과 타원형 꽃 모티브가 장식된 금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에게, 마치 세상의 끝에 둘만이 남은 것처럼, 헤어날 수 없는 황홀경에 빠트릴 듯한 키스를 퍼붓습니다.
구스타보 클림트의 1908년 작 ‘연인(키스)’입니다. 금박과 금색 물감으로 표현된 화려하고 풍부한 색감에 먼저 압도되고 나면, 기하학적이고 유기적인 패턴 장식들이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1884년 발표된 알폰스 무하의 작품 ‘지스몽다’에서도 비슷한 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 프랑스 남성들의 뮤즈로 추앙받던 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로 제작된 이 작품에서는 덩굴풀이나 담쟁이 같은 식물 형태를 연상시키는 패턴과 화려하고 우아한 장식들이 등장했고 유럽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기하학적 패턴은 당시 건축계에도 나타났습니다. 바르셀로나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에 하나로 꼽히는 안토니 가우디의 대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1882년 착공해 140년이 넘은 지금도 짓고 있는 이 건축물은 과연 죽기 전에 완공되는 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두 곡선으로 이뤄진 벽 선과 나무와 꽃을 닮은 패턴들은 미완성인 건축물을 보는 것만으로 무신론자조차 성스러워 지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할 정도입니다.
이같이 곡선적, 평면적, 유기적, 장식적 표현이 도드라진 기하학적 패턴은 ‘아르누보’(Art Nouveau)의 대표적인 특징들입니다. 화려하고 분방하고 탐미적이기까지 한 이 양식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처음 나타났습니다.
이쯤 되니, 작품은 거의 그리지 않으면서 전공 수업시간에 들어와 미술사 서적을 줄줄 외워대는 미술대학의 어느 노교수처럼 지루한 시간을 선사하게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조’를 설명하는 데 있어 칠판에 연표를 줄줄이 적어놓고 암기하기를 강요해 ‘카노사의 굴욕’이 도대체 무슨 사건이었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중학교 사회 선생처럼 설명드릴 수는 없기에, 조금만 더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예술품보다는 기계에 의해 대량생산이 된 제품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고, 이러한 대량생산 제품에 호응하는 대중들에게 반감을 가진 예술가들은 예술품 만이 가질 수 있는 가치에 중점을 두기 시작합니다. “모든 아름다운 미술 작품은 의도적이든 우연적이든 자연의 형태를 닮아야 한다”고 말했던 작가이자 미술비평가 존 러스킨에게서 그 원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구스타브 클림트, 알폰스 무하, 안토니 가우디와 같은 대표 작가들에 힘입어 결국, 아르누보는 20세기 초까지의 짧은 전성기 동안 건축, 가구, 제품, 패턴, 시각디자인 등의 모든 영역을 포용했습니다.
또한 2020년대인 현재에도 포스터, 패키지, 광고, 공장, 지하철 입구, 주택 등의 인공적 환경 전반에 관여할 정도로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량 생산된 제품에 매력을 느끼는 대중은 저속하다’고 여기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도로 ‘아르누보’ 양식을 고안해낸 예술가들이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말이죠. |